그토록 고대했던 고향으로 돌아와 평안을 누렸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 평안이 깨지는 사건이 찾아오는데, 사랑하는 딸이 희생을 당했고, 그로 인해 가정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은 말씀을 주십니다.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이스라엘에게 심심치 않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낸 여호와다’ 어려움과 갈등, 문제 속에 있지 말고,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다시 본질로 돌아가 언약을 잡고 회복하라는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면 보암직하게 보이다 겉모습의 아름다움에 끌리게 되고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은 두려움만 생깁니다. 창세기 3, 6, 11장의 문제가 고스란히 반복되어 내 생각, 내 주장, 내 것만 누리다 문제 속에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것만 놓치게 되니 문제 속에서 사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너희의 근본이 무엇이며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는지 바울은 말합니다.
성도인 너희는 성삼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들이야 라고 말합니다. 질그릇 같으나 하나님이 주신 보배를 가졌고, 세상 신에서 벗어나 성령을 소유한 자들이고, 어떤 문제를 당해도 그리스도라는 답을 가진 자라는 겁니다. 성도인 너희는 이제 보좌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 질 것이고, 환난을 만나나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으로 기준을 바꾸는 삶을 산다는 겁니다. 성도의 배경은 과거, 현재, 미래 살리는 증거라 말합니다. 영원한 집이 있고,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고,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나 보장 되었다는 겁니다.
이 모든 축복을 가지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그 일을 감당하라 말합니다. 나는 이미 새것이 되었으니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가지고 그 어떤 사람도 그들의 죄가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게 하라는 겁니다. 나에게 그 어떤 문제 와도 나에게는 그리스도 있으니 문제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것, 그것이 내가 가진 본질이고 근본이니 기도로 누려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내 주변도 살리고, 교회도 살리는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살아나서 살리는 자의 축복을 응답으로 누리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