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향한 다락방, 24년 7월 첫째주 맥추감사주일에
사람들의 말에 상처 받습니다.
그들의 말은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고, 나에 대한 평가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나를 사랑해서 나에게 말을 건내지 않는다는 것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에 상처 받으면 손해 입니다.
‘나 외에는 별로 관심 없습니다’
자기에게 보이는 것만 자기의 생각으로 평가하는 말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말을 건내는 이가 나를 책임져 줄 수 없고, 자기가 보기에 불편하고 답답해서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외에는 관심이 없고, 내 말하기 바쁘고 내 말을 믿고 살기에 그렇습니다.
자기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자기를 제약하는 존재는 설령 하나님 이라고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 속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 복음만 들리지 안혹, 복음이 들리지 않으니 복음만 놓치고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복음 붙들고 증거로 잡으라 하는데도 그 말이 내게 와닿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해결이 되어야지 복음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고,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나하고는 맞지 않다며 사람이 할 수 있는 도리를 다하고 노력을 다해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멸망의 시간표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노력을 다해 사는 것이 잘 사는 것 같지만 문제를 덮어두고 살고, 막상 문제 찾아오면 겁먹고 피하려고 합니다.
살아 남으려고 갖가지 방법을 다 써보지만 근본적 해결과는 멀어집니다.
대국이 일어나 자기 나라를 집어 삼키려는 극박한 상황 속에서 자기 나라와 왕위를 지키려 갖은 노력을 했던 아하스 왕에게 닥친 현실이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주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는 증거는 너무 현실적이지 않았고, 응답은 너무 멀어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다 약속하십니다.
갖은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 나라는 망했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자들이 살아남았고 회복의 응답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종교를 주신 게 아닙니다.
종교는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규정하고 우리가 해결하려 노력한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나의 문제를 알려주시고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신 겁니다.
이 복음을 붙들었던 자들은 포로상태에서도 응답을 받았고, 세계를 살리는 응답을 누리게 됩니다.
오순절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 체험했던 초대교회 제자들처럼 복음 붙들고 응답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응답 받지 못해 상처 속에서 살았던 옛날의 나로 돌아가지지 않습니다.
기도 24, 응답 25, 작품 영원으로 복음 붙들고 기도 계속해 나가면 오순절 마가다락방의 응답 나도 받게 됩니다.
초대교회 오순절에 임했던 응답을 확인하고 언약으로 붙드는 맥추감사주일, 이 날에 하나님이 주신 복음 붙들고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